섬 여행은 언제 찾아가도 낭만적이다. 더구나 거문도는 아름다운 비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의 역사까지 함께 되새김해볼 수 있는 모험의 섬이어서 더 매력이 넘친다. 더구나 배에서 내려 만나는 첫 풍경은 여느 섬들과는 사뭇 다르다. 마을 깊숙이 요새처럼 터져있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일본식 건물들을 많이 만난다. 영국 해군들이 이 섬을 점령했을 때, 학문이 높은 사람들이 많아서 '거문(巨文)'이라고 했다고 하지만 이러한 풍경이 왜도(倭島)나, 이(夷)섬 이라고 하는 말이 생겼을 지도 모른다.
100년 가까이 된 등대가 있고, 영국군들의 묘지가 있는 여수 거문도. 섬 곳곳에는 동백나무가 지천이다. 거문도는 고도·동도·서도와 삼부도·백도 군도를 아우르는 섬을 일컫는다. 본섬은 동도·서도·고도 등 세 섬으로 이뤄져 삼도(三島), 삼산도(三山島)라 불렸다. 본섬은 그야말로 누군가 만들어 놓은 '요새'다. 누구든지 매서운 풍랑이 불면 망설이지 말고 들어와 쉬라는 듯 두 섬이 팔을 뻗어 둥그렇게 감싸고 있다.
거문도는 항상 바다가 잔잔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러시아·영국·미국·일본 등 열강이 탐냈던 천혜의 항구였다.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위치한 거문도는 동도와 서도, 그리고 고도의 세 섬으로 구성되며, 고도와 서도는 삼호교로 연결되어 있다.
태풍이나 폭풍이라도 불면 바위지대를 파도가 넘나든다고 해서 수월산(水越山)이라 불렸던 서도에는 등대가 있다. 등대로 가는 길은 흐드러지는 아름나무 나무로 이루어진 동백꽃 길이다. 섬에 자라는 나무의 70%는 동백나무이다. 거문도를 동백섬으로 부르는 것도 이 길 때문이다.
1905년 세워진 거문도 등대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 남해안 최초의 등대이기도 하다.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면 만나는 기암절벽 위의 하얀 등대는 바라보기만 해도 둥그런 원통형이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게 낭만적이다. 동양최대의 프리즘 렌즈를 자랑하는 거문도의 등대는 프랑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적색과 백색이 15초마다 교차한다. 1905년에 처음 불을 밝힌 이래 지금까지 등대지기가 안개가 심한 날은 무적신호를 보내 안전 항해를 돕고 있다.
해양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옛날, 등대는 항해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줄기 빛이자 바로 생명선이었다. 거문도에 등대를 세운 이유는 의외로 매우 간단하다. 그만큼 지정학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1885년 거문도를 점령해 버렸다. 영국군 병사들은 23개월 동안 이곳에 주둔했다. 거문도에는 지금도 영국군 수병 묘 3기가 남아 있다. 당시 영국군은 해군 제독 해밀턴의 이름을 따서 거문도를 '포트해밀턴'이라고 명명했다.
우리의 역사가 보이는 섬인 거문도. 그 안에 동그랗고 하얗게 빛나는 등대가 섬을 굳게 지키고 있다. 누가 노랫말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거문도의 등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노래도 있다. 등대지기의 회환과 외로움, 안개 부산하고 풍랑이 이는 날, 선박들의 무사항해를 누구보다도 소원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고 있는 노래이다.
출렁출렁 파도는 삼산을 울리고 남쪽에는 희미한 한라산/동백꽃이 만발한 수월산 밑에 여기를 찾아오라 거문도 등대//반짝반짝 비치는 등대의 불은 15초 간격 두고 일섬광 강약 교섬광/ 어두운 밤에 앞 못 보는 길 잃은 배야 여기가 거문도다 길을 찾아라//붕붕붕붕 울리는 무신호 기적 40초 간격 두고 5초붑니다/안개 끼어 앞 못 보는 눈 잃은 배야 여기가 거문도다 조심하여라//하하하하 웃음이 끊임이 없고 직원 가족 친절히 일가족처럼/ 업무에는 충실히 힘을 다하니 갈매기야 전해다오 거문도 소식 - 거문도 등대가
등대 옆 건물은 예전에는 등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숙소였다. 창을 통해 보이는 거문도의 풍광을 한 눈에 누릴 수 있는 이점을 이용해 지금은 거문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가장 인기 있는 근사한 공간인 숙박 장소로 활용 중이다. 거문도 등대로 연락하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쉼터의 등대, 삶의 등대가 되고 있다.
거문도 서도마을 언덕에 위치한 인어 ‘신지끼’의 전설이 살아 흐르는 인어해양공원에는 4.5m 높이의 인어상이 세워져 있다. 거문도 주민들에 따르면 새벽 어스름한 달빛과 물살 위에서 희미하게 비친 인어는 몸 윗부분은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여인이었고, 아랫부분은 긴 꼬리가 백합처럼 고운 물고기였다고. 해안 절벽 바위에 자주 나타나 풍랑이 예상되는 날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나가면 돌을 던지거나 휘파람, 혹은 노래를 불러 나가지 못하도록 일러줘 어민들을 보호했다고 한다. 인어상 주변에는 돌담장과 바다엔 자연석을 깔아 만든 예쁜 산책로(1.5㎞)가 있다. 인어해양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녹산등대로 접어 든다. 이생진 시인이 거문도를 향한 마음을 표현한 시가 등대가는 길 양옆으로 쓰여져 외로운 등대가 낭만속으로 녹아든다.